가을이다.
마음의 양식을 쌓아야 될 것만 같은 겨절이다. 거실 모퉁이 나즈막한 3단 책꽂이를 뒤적였다. 조그마한 책 한 권을 찾았다. 아마도 지난해 아내가 읽고 꽂아두었던것 같다. 책의 체구가 너무 작아 키가 큰 다른 책 틈바구니에 끼어 존재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일단 책 제목부터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언어의 온도』(저자 이기주)
제목을 보는 순간, 뭔가가 내 마음속으로 '쑥' 밀치고 들어왔다.
책을 펼쳐 들고 한두 장 넘기면 '목차' 보다 조금 앞에 있는 '서문'을 먼저 읽었다. 읽는 순간 이 책은 나를 위한 책이구나.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그런 책임을 한 눈에 알아 보았다.
언어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습니다..
온기 있는 언어는 슬픔을 감싸 안아 줍니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언어에는 감정이 잔뜩 실리기 마련입니다. 말하는 사람은 시원할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정서적 화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얼음장같은 차가운 표현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돌려세우긴커녕 꽁꽁 얼어붙게 합니다.(서문)
이렇게 시작하는 이 책은 저자 이기주님이 일상에서 발견한 의미 있는 말과 글, 단어의 어원과 유래, 그런 언어가 지닌 소중함과 절실함을 담아 『언어의 온도』라는 제목으로 집필할 책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 아무런 느낌도 가질 수 없었던 아주 평범한 일상들을 저자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그것을 새롭게 해석해 글로 자신만의 느낌으로 표현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와! 저자는 어떻게 저런 사소한 것에서 이런 깊은 감정을 느꼈을까!" 하는 놀라움의 연속이 시작된다.
책에 담긴 용어가 어렵거나 전혀 화려하지 않는데도 곳곳에 숨어 있는 주옥같은 문장들은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을 충분히 촉촉히 적셔줄만하다. 아마 작가 스르로 '활자 중독'이라 할 만큼 책사랑에서 비롯된 내공이 10갑자 만큼 쌓인 글을 보는듯 하다.
몇 구절을 소개해 본다.
가짜와 진자를 구별하는 법
"---가짜는 필요 이상으로 화려합니다. 진짜는 안 그래요. 진짜는 자연스러워요. 억지로 꾸밀 필요가 없으니까요."
이번에 영화의 한 대목 '단어의 바다'를 '인생의 바다'로 바꾸어 표현한 글이다.
"사람은 태어나면 다들 자기만의 배에 오르게 된다. 가끔은 항로를 벗어나 낯선 섬에 정박하기도 하지만 대게는 끊임없이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간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만의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
다마 바다를 건너는 일이 모두 똑같을 리는 없다. 저마다 하는 일과 사는 이유가 다르고, 사연이 다르고, 또 삶을 지탱하는 가치나 원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소개하자.
사람, 사랑, 삶에 대한 작가의 견해는...
"세 단어가 닮아서일까.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사랑이 끼어들지 않는 삶도 없는 듯하다."
책을 읽다 보며 자꾸만 읽고 싶어 지는 욕구가 생긴다. 출장간 1박2일, 한 권을 단숨에 읽어 버렸다. 그리고 벌써 3번째 책을 펼쳐 들고 있다. 읽을 때마다 새롭게 마음에 와 닫는 문장이 눈에 밟힌다.
이 책은 전반에 걸쳐 사랑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애하고 있다. 사람들과의 사랑, 자연과의 사랑, 언어와의 사랑 등등. 온전히 한 권을 읽고 나니 어제본 세상과 오늘보는 세상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음의 눈이 뜨인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12월까지 지속될 것같은 무더운 더위는 갑자기 다가온 가을에 저만큼 멀어져 있다. 계절은 벌써 가을 한 가운데 깊숙이 파고 들었다. 완연한 가을 날씨, 책 한권 추천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언어의 온도』를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한 해의 마지막을 알리는 차가운 겨울이 오기 전에 『언어의 온도』로 따듯한 겨울을 맞이하기 바란다. 사랑하는 법, 사물을 보는 힘, 그리고 내 주변을 다시한번 돌아보게끔 만드는 이 좋은 계절에 딱 알맞은 책이다.
P.S 글쓰기 연습용으로 필사하기에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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